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의 올바른 전승을 바라며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6-12-15 07:39:06

메구로가조엔에 새겨진 조선 장인들의 솜씨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의 올바른 전승을 바라며
2003년 5월 첫발을 내디딘 '꿈꾸는 과학'은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꿈꾸는 과학은 모두가 즐거운 과학을 이야기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꿈꾸는 과학은 다양한 과학책들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꾸준히 과학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써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구축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는 꿈꾸는 과학의 소망이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전하고 이러한 즐거움들이 모여 건전한 과학문화를 만들어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편집자 註] 
 

  
▲ 동경의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  ⓒ  
일본의 동경에는 멋들어진 연회장이 한 곳 있다. 1932년에 호소카와 리키조라는 사업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연회장은 일본 최고의 실내장식을 자랑한다. 일본 특유의 미학으로 조성된 정원 안에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의 내부가 어찌나 호화의 극치를 이뤘던지 소화(昭和:1926~1989)의 용궁전으로까지 불릴 정도였다.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건물은 연건평(각 층의 바닥면적을 합한 면적)이 8천여 평, 객실 2백여 호, 바닥 길은 2킬로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호화판 연회장이다. 

메구로가조엔의 공사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기술진이 투입되었다. 덕분에 일본 특유의 독특한 기술이 모두 발휘되어 각각의 방부터 시작해서 정원, 복도, 심지어 화장실까지 어느 하나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메구로가조엔의 작품들은 옻칠과 나전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일본화에까지 엄청난 양의 나전이 사용된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또한 미술품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가 옻칠로 발라져 독특한 멋을 뽐내고 있다. 벽과 천장, 복도, 200여 개의 방이 모두 옻칠로 이루어져 건물 전체가 옻칠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렇게 뜬금없이 일본건물 이야기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메구로가조엔의 나가토(長門)라는 방의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송학도(松鶴圖)라는 나전 작품 때문이다. 어른 키보다도 큰 학들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자랑하는 송학도에는 주름질, 꺽음질 같은 조선 나전 기법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 메구로가조엔에 전시된 송학도의 일부 : 광신(光信)이라는 장인의 이름이 조그마하게 새겨져 있다.  ⓒ  
아니나 다를까? 작품 한쪽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일본인의 이름 옆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광신’(光信)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광신이라는 이름은 일본화가가 도안한 그림에 자개를 새겨 넣은 조선의 무명 장인의 이름이다. 그리고 조금 더 눈여겨 주위를 살펴본다면 메구로가조엔의 수많은 옻칠 작품들 속에 남겨진 우리나라 장인들의 솜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옻칠은 쇠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한일합병 이후에 일본은 우리나라의 옻을 모두 강탈해 갔고, 옻칠 장인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견디기 힘든 괄시와 고된 노동이었음이 분명하다. 나라를 잃은 설움과 분노를 이겨가며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건만, 이제 그곳에 남겨진 것은 고작 깨알 같은 이름 두 글자. 남의 나라에서 남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그들이 남긴 옻칠의 자취를 우리가 따라가 볼 차례이다.

여러 가지 옻칠 이야기

과거에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은 돌, 금속, 나무쯤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은 너무 무겁고 가공이 힘들며, 금속은 자연상태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다. 하지만 나무는 다르다. 가볍고 가공이 쉬우며 튼튼하기까지 하다. 또한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나무였기 때문에 모자람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나무의 종류와 가공방법에 따라 그 성질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기도 쉬웠으니,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나무만큼 좋은 재료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나무는 습기와 온도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나무는 내열성이 떨어져 온도 변화에 쉽게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적절한 습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쉽게 못 쓰게 되어 버린다. 습도가 낮아 너무 말라 버리면 갈라지거나 터져버리고, 반대로 습도가 너무 높으면 쉽사리 썩어버린다. 따라서 애써 손질해 놓은 나무를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내열성과 방수효과를 높여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사용된 것이 바로 옻나무의 분비물인 옻칠이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옻칠을 하게 되면 나무 표면에 단단하고 견고한 막을 형성시켜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아 나무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옻칠의 주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 옻산)은 공기와 접촉하면 효소반응에 의해 고분자를 형성하면서 견고하게 굳어진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고분자의 특이한 3차원 구조가 옻칠의 훌륭한 막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 옻산(urushiol)이 효소반응에 의해 경화되는 과정의 분자구조.  ⓒ  

또한 옻칠은 산이나 알칼리에도 녹지 않으며 내염성, 방부, 방충 효과가 또한 뛰어난 우수한 도료이다. 제작된 지 800년이 지난 나무판인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옻칠 덕분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의 옻칠은 그 자체의 광택을 이용한 아름다움에 더 무게를 두고 있지만, 옛날 옻칠의 시작은 실용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옻나무에서 옻을 채취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우선 화칠법(火漆法)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채취 방법이 있다. 옻나무 가지를 90~120cm로 잘라 냇물에 일주일간 담가 두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게 한다. 그리고 나무에 상처를 내어 불 위에 구워 흘러나오는 칠을 긁어서 모으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화칠(火漆)은 수분이 너무 많고 가열에 의해서 효소가 많이 파괴되는 탓에 도료로 사용하기에는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주로 칠보다는 약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 살소법 :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오는 옻을 채취한다.  ⓒ  
따라서 옻칠에 사용하는 옻을 채취할 때는 살소법(殺搔法)이라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것은 나무 전체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채취하고, 채취가 끝나면 나무를 잘라버리는 채취법이다. 나무에 칼로 수평으로 여러 개의 상처를 낸 다음 그곳을 통해 흘러나오는 수액을 주걱으로 긁어모은다. 살소법 채취는 일반적으로 6월 중순에서 시작하여 10월 중순에 끝난다. 1년 중 약 120일 가량만이 채취가 가능한 셈이다. 숙련된 채취자가 600~800주의 옻나무에서 채취할 수 있는 옻은 약 50kg 정도뿐이다.

채취된 상태 그대로의 옻은 ‘생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칠은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 옻산) 이외에도 수분, 질소와 같은 다양한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고급도료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생칠을 원형의 나무통에 넣고 밝은 태양 아래서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주는 정제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면 20~25%였던 옻의 수분함량이 3~5%로 줄어들면서 암갈색이나 백갈색을 띠었던 생칠이 점차 갈색의 투명한 색으로 변한다. 그 후 여과를 통해 기타 불순물을 제거해주면 투명한 갈색의 ‘정제칠’이 만들어진다. 나무에 생칠을 한 곳에 열이 닿으면 회색빛으로 얼룩이 지지만, 정제칠을 하면 전혀 색이 변하지 않는다.

잊혀져간 옻칠의 지혜

이렇게 만들어진 정제칠을 바니시(varnish:도료)처럼 대충 나무에 바르기만 하면 옻칠이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천년을 버티는 아름다운 옻칠을 만들기란 그리 녹녹치 않다. 수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옻칠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아니다. 바르게 말하자면 알고 있었으나, 오래 전에 잊혀져간 사실들이다.

의외로 검은색 흑칠(黑漆)과 갈색의 주칠(朱漆)이 옻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옻칠의 색깔은 서양물감만큼이나 형형색색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투명한 색의 정제칠에 산화철을 넣고 가열하면 아주 진한 검은 칠이 된다. 또한 붉은 칠은 수은 성분이 들어있는 붉은 색 주분(朱紛)을 넣어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제칠에 암채(巖彩)라는 색상이 있는 돌가루를 넣으면 어떤 색깔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옻칠을 이용하여 서양화 못지않은 현란한 색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색깔 있는 옻칠을 이용한 회화는 이미 옻칠장인들에 의해서 벽화나 불당에 널리 사용되었던 것들이라니, 무척이나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전용복 옻칠 21c 전’에 전시된 옻칠 작품.  ⓒ  
또한 목재칠과 나전칠기가 옻칠의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야 한다. 옻칠은 금속, 도자기, 천, 종이, 가죽 등 거의 모든 재료들에 옻칠을 입혀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와태칠(瓦胎漆)이라는 토기에 옻칠을 하는 기법은 1200년 전 낙랑시대에도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그리고 옻칠을 한 뒤 높은 온도에서 말린 고려시대의 금속은 아직도 녹이 슬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옻칠은 나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의 장점과 내구성을 높여주는 다재다능한 도료이다. 

그리고 옻칠은 옻을 칠한 재료와 하나가 된다. 시간이 지나 변질되면 푸석푸석 떨어져 나가는 일반 바니시와는 달리 옻칠은 나무에 스며들어 볏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건조된 후에도 옻칠 자체가 습기를 품어 스스로 습기를 조절하며 나무의 경우 내부가 썩지 않게 숨을 쉬는 효과를 준다.

경남 다호리에서 발견된 B.C. 1세기 시대의 고분에서 발견된 옻칠이 된 목재 제기는 전혀 썩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옻칠이 가지는 놀라운 내구성과 부패방지 능력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예다. 그리고 이런 옻칠의 특성 덕분에 방안에 옻칠을 한 나무가구가 있다면,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뿜고 습할 때는 습기를 빨아들여 습도조절을 해주기도 한다. 가구 자체에 가습기 기능이 딸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옻을 다양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옻이라는 성분 자체가 워낙 다루기 까다롭고, 오히려 습기가 적당히 있어야만 마르는 기이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재료에 칠하느냐에 따라서 습도, 건조시간, 온도, 칠하는 옻의 종류와 두께를 세밀하게 조절해 주어야지만 제대로 된 옻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옻칠은 보통의 인내와 경험, 기술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정교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 창원 다호리 유적 출토 목제 칠기 : 2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다.  ⓒ  
때로는 뼈아픈 반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옻칠을 이용해 삶을 풍성하게 했던 옛 지혜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많이 쇠락했지만, 옻칠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이다. 옻의 채집부터 옻칠 방법까지 일본의 영향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이미 많은 기술이 실전(失傳)되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장인들마저도 빠르게 줄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1400여 년 전 성덕태자가 불교문화를 전파하면서 전해준 옻칠이 일본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메구로가조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그들의 옻칠문화를 화려하게 발전시켜 왔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우 단순한 칠기공예 외에도 선박, 항공기 등 각종 현대적인 용도로 옻칠을 응용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런 기술력의 차이는 정제칠의 제조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생칠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일본으로 수출되고, 그것이 일본에서 품질 좋은 정제칠로 가공되어 우리나라로 역수입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현실이다.

  
▲ 옻칠 찻잔 : 옻 칠예가 전용복 씨의 작품.  ⓒ  
물론 이런 현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질렀던 수많은 만행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서양문물에 의해 급격히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전통문화가 단절되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등 급격한 근대화를 겪어야 했던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옻칠을 한 가구보다 값비싼 이탈리아산 가구를 더 선호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몇몇 칠 장인들은 까다로운 옻칠보다 질은 더 떨어지지만 사용하기는 편리한 일제 ‘카슈’칠을 선호한다. 아직도 장인을 멸시하는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구조가 우리의 의식 속에 잔존해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대외적으로 한국전통예술이 이름을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에서는 비주류로 취급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드는 것도 분명 우리들이다. 

이제는 남의 잘못만을 좇던 눈을 돌려 섬세하게 만들어진 옻칠 공예품을 바라보자. 따가운 태양빛마저도 부드럽게 반사시키는 아름다운 광택은 바라보는 이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아름답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한순간 자랑으로 끝나버리는 무책임한 자부심만을 추구해 왔지만, 이제는 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진정 어떤 모습인지 뼈아프게 반성해 봐야 할 차례인 듯하다. 옛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의 올바른 전승은 결코 몇몇 장인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나는 조선의 옻칠쟁이다』, 전용복, 한림미디어, 2002.
『전통과학기술 조사연구(Ⅲ)』, 국립중앙과학관, 1997.
『목칠공예』, 박영규, 김동우, 솔, 2005. 


/꿈꾸는 과학 4기 윤나오  blue-feath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