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에 입각한 만주고대사
궈다순 '동북문화와 유연문명' 완역
1924년 무렵 스웨덴 학자 안데르손은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秦皇島市) 베이다이허(北戴河) 해안 동쪽 진산쭈이(金山嘴)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천추만세(千秋萬世)라는 글자가 적힌 와당과 한대(漢代)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 등을 수습했다.
이후 1982년 4월에는 이곳에서 인접한 랴오닝성 수이중현(綏中縣) 완자진(萬家鎭) 창쯔리촌(墻子里村) 남쪽 해안과 허자촌(賀家村) 남쪽 헤이산터우(黑山頭)에서도 성격이 비슷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이후에도 이들 유적 반경 50㎞ 내에서 진한(秦漢)시대에 해당하는 중요한 유적들이 연이어 발견됐다.
중국학계에서는 이를 "진나라 때 행궁(行宮) 유적 건물터"로 간주하고 있다. 6국을 멸하고서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 시황제가 천하를 순수(巡狩)하는 도중에 잠시 머무른 임시 궁궐 흔적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이른바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궈다순(郭大順.70)은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일련의 발견은 진나라가 동북 지역에서 건립한 통일다민족 국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획기적 의미를 지닌다"거나 "이들 유적이 중국 통일다민족국가의 중요한 한 상징이 된다"고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발해만 연안에서 발굴된 이들 궁성(宮城) 혹은 왕경(王京)에 버금 가는 유적이 진 시황제의 행궁이라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그 유적과 유물 연대가 진나라 때에 해당하며, 더구나 그 위상이 왕성(王城)에 견줄 만하다 해서 발해만 일대에 그의 행궁이 무려 6곳 이상이나 동시에 존재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번역총서 제13집으로 최근 내놓은 '동북(東北)문화와 유연(幽燕) 문명'은 궈다순이 장싱더(張星德) 랴오닝대 부교수가 함께 지난 2005년 '동북문화와 유연문명'(東北文化與幽燕文明)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중국어 원저를 완역한 것이다.
원서는 700여 쪽짜리 단권이지만 번역 분량을 고려해 이번 한국어 완역본은 상ㆍ하 2권으로 분책했다.
발해만 유역 유적과 유물에 대한 해석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다민족통일국가 수립이라는 현재의 중국이 처한 필요성에 따라 고대사까지 그에 맞추어 만들어 내려 한 전형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즉, 지금의 중국 동북지방에는 홍산문화(紅山文化)처럼 중원 지역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 독자적인 문명이 꽃을 피웠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결국 중원문화와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고, 그러다가 진한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중국 영역에 편입됨으로써 오늘날 중국문화를 이룩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따라 궈다순은 만주지역 고대문명사를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 초기 철기시대 등 5단계로 나누고 그 하나하나를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토대로 체계화하려 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지배하려는 이와 같은 사관(史觀)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럼에도 이번 책은 수천 년에 걸친 장구한 만주지역 고대사를 체계화하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 지역에서 이뤄진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는 거의 빠짐없이 다뤘다는 점에서 이 지역 역사를 공부하려 할 때 요긴한 개설서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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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