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자서전에서 동의보감까지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허준 주도로 편찬된 조선시대 불멸의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이 한국의 7번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이번에 등재가 결정된 동의보감 판본은 1613년(광해군 5년), 편찬 총책임자인 허준 자신이 직접 간행에 관여해 나온 초판 완질 어제본(御製本)으로, 국립중앙도서관(25권 25책.보물 제1085호)과 한국학중앙연구원(25권 25책/보물 제1085-2호) 소장 중이다. 사진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문화재청은 31일(한국시간) 유네스코 사무국 마쓰우라 사무총장이 중앙아메리카 바베이도스 수도 브리지타운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한국이 등재 신청한 동의보감 초간본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승인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의 두 건을 시작으로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이상 2001년),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조선왕조의궤(이상 2007년)에 이어 모두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고 세계에서는 6번째로 많아 문화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설명
각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관심 증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2년이었다. 다만 이 무렵에는 이런 사업을 한다는 합의만 도출했을 뿐이며, 그에 따른 세계기록유산 등록기준이 마련된 것은 1995년이고, 실제 기록유산이 탄생한 것은 1997년이다.
이후 한국의 동의보감을 등재 결정한 올해 바베이스도스 회의에 이르기까지 총 9회에 걸쳐 탄생한 세계기록유산은 83개국 193건을 헤아린다.
이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아 아직까지는 세계유산 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에서는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며, 가까운 장래에는 '세계유산'에 맞먹는 대접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때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될 수 있으면 많은 유산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이미 이런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다.
이전까지는 국가별 기록유산 등재 신청 규모를 제한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한 회의에서 3건 이하만 신청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이는 그만큼 세계기록유산을 세계 각국이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등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우리가 세계기록유산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데는 '세계유산'에서의 뼈아픈 경험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세계유산'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다지 매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관광객 유치라는 현실적 경제 목적과도 뗄 수 없는 세계유산을 더 만들어내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그야말로 '혈안'이 되다시피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내 문화재 분야에서는 90년대 중반 이전을 회상하면서 "등재 기준도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았으며, 경쟁 또한 훨씬 덜 했던 그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많이 등재시켰어야 한다"는 만시지탄을 숨기지 않는다.
아무튼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전성기를 준비하는 전단계인 '정착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탄생한 세계기록유산 중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례가 많다.
1939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영화산업 진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과 제작 당시의 촬영 기술 그대로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판정을 받아 관련 영상자료가 2007년에 등재됐다.
음악 관련 유산으로는 오스트리아가 보유한 '슈베르트 악보 모음집'(2001년)과 독일이 소장한 '루드비히 반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 악보(2001년)가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이나 과학 부문에서는 '입센의 인형의 집 필사본'(노르웨이.2001년), '안데르센의 원고 필사본과 편지'(덴마크.1997년), '괴테의 생가'(독일.2001년),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자서전'(폴란드.1999년)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요가 수행자들의 의료비법과 관행에 대한 기록물이자 약초 활용법 소개한 '타밀 의료기록 모음집'(인도.1997년), 카리브해 연안 부족들의 노예 생활상을 기록한 '카리브해 노예 기록유산'(바베이도스.2003년), 무슬림 코란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오스만의 무샤프 코란'(우즈베키스탄.1997년)도 세계기록유산이다.
호주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제임스 쿡 선장의 엔데버호 일기'(2001)는 1768-71년 쿡 선장이 엔데버호를 타고 유럽인 최초로 호주 동부 해안과 뉴질랜드를 일주 항해한 기록이며, 이집트가 보유한 '수에즈 운하 비망록'도 세계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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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