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문화재를 대하는 이중성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03-05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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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칼럼]문화재를 대하는 이중성  
 
 이름 :  이만열(경향)   Read: 10    Date: 2008.03.05  
 
 
[칼럼]문화재를 대하는 이중성  

숭례문이 불타고 난 뒤 평범한 시민들이 보여준 문화재 애호심은 매우 자랑스러웠다. 남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추위를 무릅쓰고 나온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글썽였다. 문루 주변만 휑뎅그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일부 시민은 헌화로 마음을 달래고, 어떤 이는 상복에 제사상까지 차려놓고 마치 망자를 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존되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 문화재 애호의식이 그런 애석함으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한다. 

- 숭례문 화재때 보여준 애호심 - 

숭례문이 불타던 날, 소오 설의식(薛義植)의 ‘헐려 짓는 광화문’의 일절이 떠올랐다. 시인은 일제 치하 국운을 상징하듯, 광화문이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못하지만,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하며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한다”고 조선 백성의 설움을 대신했다. 시인은 또한 팔도강산의 석재와 목재와 인재의 정수를 뽑아 지은 광화문, 돌덩이 하나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그 광화문을 두고, “푸른 이끼 낀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다”고 조선 민중의 처지를 광화문에 비겨 서러워했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의 소실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국민을 보면서, 저런 문화의식을 가진 국민이 이번 기회에 문화유산을 더욱 아끼는 마음을 강렬하게 갖게 된다면 문화재 보전에는 더할 수 없는 좋은 계기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대문은 제 한 몸 불살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문화유산 애호의 귀중한 의식을 심어준 셈이어서 전화위복의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긍정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준급의 문화의식을 가진 백성들 속에서 국보급 문화재에 용의주도한 계획하에 방화하는 이웃이 있었다는 것 또한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생각을 이곳으로 돌리게 되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거나 소리없이 소멸되어 가는지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숭례문은 시각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오히려 지나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정작 우리 주변에 가꿔가야 할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국민들은 그런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숭례문을 사랑하듯 한결같은 애정을 표시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 재산권과 관련땐 훼손 일쑤 - 

얼마 전 서울 근교 옛 염전의 창고들이 근대문화재 등록예고를 앞둔 시점에 하루아침에 철거되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해방 후 격동기의 역사를 증언해줄 건축물이 문화재로 등록될 기미가 보이자마자 철훼되어 오유(烏有)로 돌아갔다. 그런 유산 가운데는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된 건물도 있었다. 몇 주 전에는 근대미술가의 고택을 보존해야겠다는 당국의 의지에 맞서 문화유산 등록을 방해하려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목격했다. 모두 목전에 보이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한 편에서는 문화재가 망실되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주변의 문화유산이 문화재로 등록(지정)되어 재산상의 손실이라도 받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이런 이중적인 문화재관이 안타깝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자신의 부동산 대가에 대한 불만으로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는 범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재산 때문에 문화재를 파괴한 범주에 속할 것이다. 국민의 재산권과 문화재 보존의 조화, 여기에 문화재정책의 고민이 있다. 잃고 난 뒤에 비로소 문화유산이 그 어떤 재물과도 바꿀 수 없다는 보물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숭례문 소실의 대가는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숭례문 망실로 뻥 뚫린 국민들의 가슴 속에 숭례문 못지않은 문화재를 만들어가는 길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은 하찮게 보이지만 세월의 연륜 속에서 후손들이 기리고 가꾸어야 할 제2, 제3의 숭례문은 얼마든지 있다. 만들어진 문화재뿐 아니라 더불어 만들어가야 할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더 아끼는 것이 소실된 숭례문이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다. 

〈 이만열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