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디지털 시대에도 굿은 계속된다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12-28 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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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도 굿은 계속된다 
서울 곳곳에서 마을 번영·화합 비는 제례·굿판 벌어져 

동대문구 장령당제… 6시간동안 열두 마당 굿판 
성동구 아기씨당굿… 북쪽나라 다섯 공주 이야기 
마포구 부군당제… 포구 시절부터 300년 계속 

정말 ‘제례와 굿의 시즌’이라고 할 만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세밑으로 향하는 요즘 서울 곳곳에서 공동체의 번영과 화합을 기원하는 마을 단위의 제례와 굿이 벌어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모습’이라고들 해도 민중신앙은 꿋꿋하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府君堂) 등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신성한 공간’들이 제법 있다. 전통 굿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지역 사람들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의 번영 기원-동대문구 장령당제 

설렁탕의 유래가 된 제단 ‘선농단’, 조선 왕족이 잠든 ‘영휘원’ 등 유적이 많은 동대문구는 무형(無形)의 전통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지난 12일 오전 10시부터  
답십리 5동 원동쌈지공원 장령당에서는 주민들이 건강과 국가 발전을 기원하는 ‘장령당제’가 열렸다. 먼저 수호 장군인 궁안(宮內) 장군, 명마(名馬)장군, 용마(龍馬) 장군께 제사를 지내는데, 제물인 돼지는 다른 색이 끼일 수 없는 새까만 수퇘지만을 쓴다. 

이어 바깥의 액운을 막는 ‘좌우수살맥이’, 천연두를 물리치는 ‘별상굿’, 잡귀와 악신을 물리치는 ‘신장굿’, 집안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성주굿’ 등 장장 여섯시간에 걸쳐 열 두 마당의 굿판이 이어졌다. 

[사진설명]북쪽나라 다섯 공주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아기씨당굿이 행당동 굿당에서 열리고 있다. / 

성동구 제공예전에 전염병과 풍수해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임금이 ‘장령당’이라는 명칭으로 제를 올리도록 어명을 내린 것이 기원이 됐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입했으나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끝내 물러났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져온다. 

13일 오후 6시 전농 4동 부군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제례를 올렸다. 이 동네에서는 예부터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반(부군할아버지)과 그 부인(부군할머니)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왔고, 부군당은 15세기쯤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당집에는 부군할아버지·할머니 외에도 ‘망방청인산도국긔’, ‘거사도걸입안긔’ 등 신비로운 이름을 지닌 무속신들이 모셔져 있다. 

◆왕십리의 다섯 공주님-성동구 아기씨당굿 

‘아주 먼 옛날 북쪽나라 공주님 다섯 분이 나라를 잃고 남쪽으로 피란와 평생을 살았던 동네. 그 공주들이 죽고 난 뒤 사람들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자 온 마을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다’. 성동구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굿인 ‘아기씨당굿’에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다. 

이들이 터를 잡고 평생을 살았다는 동네가 바로 왕십리. 굿당은 오랜 세월 동안 몇 차례 터를 옮긴 끝에 1944년에 지금 위치(행당동 128-901)에 자리 잡았다. 굿당은 성동구 향토유적 1호, 아기씨당굿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33호로 지정돼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길이 닦이는 등 동네는 매년 변하고 있지만, 매년 음력 4월에는 공주들의 탄생을 기리는 ‘탄신굿’이, 음력 10월에는 온동네가 어우러지는 ‘대동굿’이 열린다. 올해 대동굿은 지난 12일 오전 11시부터 6시간 동안 주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뱃사람의 안녕 기원-마포구 부군당제 

황포돛단배가 물길을 가득 메우고 포구에는 새우젓 짠내가 가득차던 시절부터,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우뚝 선 지금까지 300년 넘게 마포구의 당인동 부군당 제례는 계속되고 있다. 멀리 연평도까지 고기잡이를 나가던 뱃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빌었던 데서 시작됐다. 

원래 부군당은 현재의 서울화력발전소 안에 있다가 50년 전 정문 앞으로 옮겼다. 매년 음력 10월 초하룻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를 지내는 전통에 따라 지난 10일 소박한 부군당은 100여 명의 당인동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저녁 7시부터 손님들을 모셔 음식을 대접한 뒤 식사가 끝나면 밤늦게 제례가 시작된다. 음식도 보통 돼지머리만을 올리는 여느 고사와는 다르게 통돼지를 통째로 구운 뒤 열두 조각을 내어 다리·몸통·부위 별로 상에 올린다. 형편상 굿은 매년 하지 못하고 4~5년에 한 차례 하는데, 올해는 축문을 낭독하는 제례만 올렸다. 안진성 부군당관리위원회 총무는 “매년 열두 토막낸 뒤 남은 돼지뼈는 추려낸 다음 끓여내어 경로당의 어르신들께 대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