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고려·신라왕릉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6-01 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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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40기 세계문화유산 된다는데 고려·신라왕릉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 

조선시대 왕릉(王陵) 40기가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이게 정말 왕릉(王陵)이 맞나?' 26일 인천 강화 강화읍 국화리 홍릉(洪陵)을 본 뒤의 느낌이다. 강화도 한복판인 고려산(436m) 중턱의 홍릉에 가려면 큰길에서 좁고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길 위로 1.2㎞를 들어가고, 청소년수련원 주차장에서 급경사 등산로로 500m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한다. 길 양쪽에 들어찬 야영장과 '세줄 다리 건너기' 같은 극기훈련 시설을 거쳐야 볼 수 있는 산비탈의 무덤은 초라했다. 여러 단을 쌓아 올린 고려 왕릉 특유의 모습이 형식적으로만 있을 뿐 봉분 주변에는 담장도, 울타리도 없이 키 1m 남짓한 석인(石人) 네개와 비석 두개가 서 있을 뿐이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려 23대 고종(高宗)이다. 재위 46년 중 28년을 몽골에 맞서 항쟁했고 최씨 무인정권을 무너뜨렸으며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1971년 사적 224호로 지정된 왕릉에는 상주 관리인이 없다. 강화군청 관계자는 "답사 오는 학생 말고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 인천 강화 강화읍 고려산 중턱에 있는 고려 고종의 무덤 홍릉. 조선시대 왕릉에 비하면 무척 초라한 규모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남한의 고려왕릉은 모두 6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예상되는 조선시대의 왕릉보다 더 이전의 왕릉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현재 휴전선 남쪽에서 피장자의 왕명(王名)이 문화재의 공식 명칭에 붙여진 무덤은 모두 48기다. 이 중 백제가 1기, 신라가 38기, 가야가 3기, 고려가 6기다. 

고려 왕릉 6기 중 4기는 대몽(對蒙) 항쟁기 수도였던 강화도에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각각 2기씩이다. 홍릉 외에 21대 희종(熙宗)의 석릉(碩陵·사적 369호), 22대 강종(康宗)의 비 원덕태후(元德太后)의 곤릉(坤陵·371호), 24대 원종(元宗)의 비 순경태후(順敬太后)의 가릉(嘉陵·370호)이다. 


▲ 경기 고양에 있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능. 지난 2001년 도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일보 DB 
홍릉말고는 모두 1992년에야 사적으로 지정된 이 무덤들은 이후 나름대로 정비와 보수를 거쳤지만 여전히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곤릉은 표지판이 부실해 사격장이나 논두렁으로 잘못 들어서기 쉽고 무덤 주변에 있던 석인과 석수들은 사라진 상태다. 석릉은 인적 드문 산길을 350m가량 걸어가야 찾아갈 수 있다. 진강산 등산로에 있는 가릉만이 비교적 정비된 진입로를 갖췄다.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고려왕릉은 2004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곤릉과 가릉에서 최상급 고려청자를 비롯한 유물 100여 점이 출토됐던 것이다. 나머지 2기는 모두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의 무덤이다. 

공양왕릉이라는 이름의 무덤이 경기 고양(사적 191호)과 강원 삼척(시도기념물 71호) 두 곳에 있는 것이다. 고양의 무덤은 조선 왕조에서 인정한 것인 반면 공양왕이 유배된 뒤 살해당한 삼척의 무덤은 민간에서 전승되는 왕릉이다. 이 밖에 강원 고성에도 전승 무덤이 하나 있다. 


▲ 경북 고령 지산동의 대규모 대가야 고분들. 왕릉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피장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일보 DB 
◆신라·가야·백제 왕릉은… 

경주에는 대규모 고분이 많다. 신라 1대 임금 혁거세거서간(박혁거세)과 왕비 알영 등의 오릉(五陵·사적 172호)부터 55대 경애왕의 능(222호)까지 신라 왕 36명과 왕비 1명의 무덤이 경주에 있고, 마지막 56대 경순왕의 능(244호)은 경기 연천에 있다. 경순왕은 고려에서 '왕의 시신은 도성 10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해 연천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주의 왕릉 중에서도 특히 선덕여왕릉(27대), 무열왕릉(29대), 문무왕릉(30대), 성덕왕릉(33대), 헌덕왕릉(41대), 흥덕왕릉(42대), 원성왕릉(괘릉·38대) 등은 학계에서 피장자가 확실한 무덤으로 꼽는다. 

해마다 대가야(大伽倻)를 테마로 한 축제가 열리는 경북 고령에는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들이 즐비한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 그러나 피장자가 알려진 가야의 고분은 경남 김해의 수로왕릉(사적 73호)과 수로왕비릉(74호), 산청의 구형왕릉(214호) 정도다. 

백제의 고분 중에서는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이 피장자가 밝혀진 유일한 무덤이다. 25대 무령왕의 이름인 '사마왕(斯麻王)'이라는 글자가 적힌 석판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됐던 것이다. 

◆고대 왕릉도 세계유산이 될 수 있나?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이유에 대해 ▲500년 한 왕조의 왕릉이 완벽하게 남아 있고 ▲제례(祭禮)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인의 세계관을 압축했고 ▲의궤 등 풍부한 역사적 기록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중시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그 전 시대의 왕릉들도 훌륭하지만 이 네 가지 측면에서 조선시대의 왕릉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고분 전문가는 "조선왕릉의 뿌리는 고려왕릉에 있고, 고려왕릉은 신라왕릉을 계승한 것"이라며 "신라와 고려왕릉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