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정신에게 빼앗겼던 몸의 위치를 재탈환하라!
이름 : 최형국
등록일 : 2004-06-03 23:39:00

정신에게 빼앗겼던 몸의 위치를 재탈환하라! 

-오늘날 우리에게 몸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사지로 기어 다니며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립보행으로 진화를 펼친 후 선사시대의 인간 ꡐ몸ꡑ은 본능의 최고 가치관이자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인간이 문화를 만들고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인간의 철학은 오직 '정신'만을 위해 존재하여 왔다. '몸'은 그저 욕망의 대상 일뿐이며 철학의 주제에도 끼지 못하는 천박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최고의 위치에 서 있던 ꡐ몸ꡑ은 철저하게 ꡐ정신ꡑ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강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서양철학의 근원이라 불리 우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건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절대적 코기토에 심취해 철학의 역사는 오직 정신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매김 되어왔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토록 고귀하게만 여겨지고 마치 정신이 죽으면 육체는 아무쓸데도 없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철학자들에게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굳이 순수 정신이 어쩌고, 자기 반성이 저쩌고 하는 장황한 설명은 이제 그만 하고 정신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 백년동안 이미 정신은 지상최고의 위치로 떠받들어 모셔졌기에 그렇게 쉬운 말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저 높은 곳에 고이 모셔진 '정신'을 잠시 지상세계로 끌어내려 보자. 지상세계로 내려온 정신은 이제야 비로소 몸이라는 것을 통해 발현되고 이해되는 우리에게 조금은 가까운 존재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담는 그릇인 '몸'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여야만 수 백년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던 '정신'이라는 고귀한 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철학자 이거룡을 비롯한 몇 분들이 만들어 놓은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한길사-를 통해 우리에게 '몸'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몸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는 전체 아홉 개의 작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맨 먼저 동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몸의 의미로 출발하여 서양을 넘어, 좀 더 미시적인 관점으로 영화, 의료기술, 미디어, 미술사 등으로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이 책의 내용을 통해 그 동안 '정신'에게 빼앗겼던 '몸'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이 책의 시작은 동양철학의 한 축을 형성하는 인도철학에서 본 몸의 의미라 하여 인도사상사에서 나타나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며 설명하고 있다. 인도사상사에서 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이해되는데, 세계와 몸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흐름과 이 정반대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진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의 흐름은 서로를 부정하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를 적극 인정하고 때로는 서로를 벼랑으로 몰아가는 상호작용 속에서 인도사상사는 발전하게 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몸 부정의 철학과 몸 긍정의 철학이 공존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측의 흐름은 정치, 종교 등의 내생환경과 맞물려 여성의 지위문제나 불교에서의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게 된다. 결론적으로 인도사상사에서 나타난 몸에 대한 인식은 정신이라는 부분과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하고 이를 통해 인도사상사의 핵심인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가미학에서 바라본 몸이라는 장으로 중국에서 만들어져 조선 최고의 가치관으로 반도를 뒤흔든 유학의 입장에서 몸의 의미를 풀어 보았다. 물론 동양적 사유 구조방식은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일원론이 적용된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 몸에 대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본다면, 먼저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몸을 끊임없이 수행하여 욕망을 부정하고 수신(修身)이라는 절대 위상으로까지 확대시킨 욕망 절제의 미학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궁극에 이르러 사회의 발전적 도움을 말하는 욕망긍정의 안신(安身)미학이다. 욕망 부정의 수신 미학적 관점의 대표적인 인물은 공자로 그는 ꡐ극기복례(克己復禮)ꡑ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몸은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야 한다ꡐ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수신 미학적 관점은 주자학이라 불리우며 조선시대의 강고한 유교적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명대 중기 이후 안신의 철학이라 불리우며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발생한 양명학(陽明學)에서는 기존의 주자학과는 사뭇 다른 ‘수신’이 아닌 ‘안신’과 ‘보신(保身)’ 더 나아가 ‘애신(愛身)’ 미학을 강조하였다. 이는 곳 조선으로 흡수되어 형신론과 풍속화에서 몸에 대한 긍정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의 수신의 미학과 안신의 미학은 몸과 마음의 서양적 이분법 사고가 아닌 동양적 심신일원론의 관점에서 출발하였기에 그 둘의 차이는 서양에서의 몸에 대한 완전한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몸을 생각하게 하였다. 

세 번째 장은 비코와 몸의 정치의 비평적 계보라 하여 서양에서 몸이라는 존재를 비로소 철학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 비코의 몸의 해석학에 대하여 풀어 놓았다. 비코는 먼저 데카르트식의 ꡐ나는 생각한다ꡑ라는 절대명제와 결별하며 몸의 정치, 즉 육체의 해석학을 이야기하였다. 이는 실천의 무한한 광장으로서 몸을 인식하고 몸과 함께, 몸을 통해 그리고 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서양철학의 몸 인식 변화의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몸의 현상학을 말하며 ꡐ나는 나의 몸이다(육체적)ꡑ라 이야기하며 철학의 출발인 ꡐ나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접근하였고, ꡐ너ꡑ라 불리 우는 타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즉, 몸의 정치라 말하며 ꡐ정신ꡑ이 아닌 인간의 ꡐ몸ꡑ을 통한 소통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코스모폴리스를 몸을 통하여 찾게 되었다. 

네 번째 장은 타자론적인 몸철학의 길이라 하여 비코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에 대해 짚어 보았다. 메를로 퐁티는 한 마디로 ꡒ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ꡓ라 말하며 기존 철학의 절대적 지존인 ꡐ정신ꡑ을 저 멀리 낭떠러지로 밀어 버렸다. 이는 타자론적인 몸철학을 가능케 하는 생각의 전환으로 진정한 몸철학은 정신철학처럼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체성 혹은 연계성을 기초한 타인에게서 출발한다라는 철학의 탈주를 말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의 타자론적인 몸철학은 철저하게 타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이는 ꡐ나ꡑ라는 존재는 내 스스로 인식하는 ꡐ나ꡑ가 아닌 타인의 손의 의해 만져지고, 타인의 눈을 통해 확인되는 상호 인지성을 바탕으로 정립된다. 이러한 타자론적 몸철학은 나와 타인간의 상호신체성 즉 ꡐ접촉ꡑ과 ꡐ상호인식ꡑ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발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파편화 되어 버린 현실 세계의 나와 사이버 세계의 아바타적 나의 괴리감은 곧 현실 세계의 또 다른 누군가와의 접촉을 통해서 만이 진정한 ꡐ나ꡑ로 회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다섯 번째 장은 영화를 통해 본 신체와 인간 정체성의 문제를 짚어 보았는데, ꡐ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ꡑ와 ꡐ블레이드 러너ꡑ가 그 주제로 등장한다. 먼저 ꡐ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ꡑ는 현실의 ꡐ나ꡑ라는 존재를 상호 인지하는 핵심코드로 ꡐ이름ꡑ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그 이름을 통해 ꡐ몸ꡑ과 ꡐ나ꡑ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결말은 모든 것에 대한 부정과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다음으로 ꡐ블레이드 러너ꡑ는 인간의 ꡐ몸ꡑ에 대한 현실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였다. 즉, 복제인간을 통해 그들이 만약 정신까지도 복제되어 생산된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절대정신이 복제되고 몸까지도 인간에 의해서 생산된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복제 전투인간의 마지막 발언을 통해 가능하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광경들을 보았다. 오리온 셔틀의 불길 위로 공격해 들어가는 비행선들을 보았고, 타호이저 바다의 어두움을 밝힌 명멸하는 빛들도 보았지.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 발언의 요지는 곧 내 몸을 통해 보여진 것들이 그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나의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다 라는 것이다. 곧 인간의 몸에 대한 반성을 통해 ꡐ나ꡑ라는 존재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장은 도구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를 말하며 몸과 기술의 관계와 현대 의료기술, 몸, 심신의 문제에 대하여 짚어 보았다. 인간의 몸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결과로 인간의 몸을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로 혹은 생물조직체로 치환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몸과 과학 및 의료기술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장이다. 그 핵심은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몸이라 불리 우는 몸(복제인간+사이보그+신체 국부 대체물) 또한 몸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여야 만 본질적 인간 정체성을 확인 할 수 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여덟 번째 장은 구성주의 미디어 이론에서 본 몸과 기호의 관계에 대하여 짚어 보았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메스미디어에서 ꡐ몸ꡑ을 이해하고 각 감각기관의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하여 기호학이라고 하는 또 다른 상징의 관점에서 몸과 기호 사이의 역사를 설명하였다. 몸 밖으로 표현되는 기호는 곧 텍스트나 여타 매체를 통하여 기억이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저장되고 그것의 표현은 여전히 다른 기호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이를 통해 현실과의 괴리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이버 세계의 ꡐ몸ꡑ과 ꡐ나ꡑ 문제를 언어적 인지과정과 상호의사소통의 헤게모니 과정 속에서 풀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마지막 장은 서양미술사를 통해 육체, 권력, 이미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서양 미술사를 시기별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시기에 나타난 육체의 표현방식과 그러한 작품이 갖는 당시대의 현실을 이해하고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 미술작품에서 나타나는 몸에 대한 표현은 곧 시각적 형상화 과정 속에서 은밀히 묻어나는 이데올로기적 혹은 이념적 기호의 내포를 가지므로 ꡐ몸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결론적으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단순한 미술의 시기적 변화가 아니라, 몸의 역사를 부정하는 지배 권력의 표현물로서의 미술과 이러한 권력에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개인적 욕구의 표현물로서의 미술의 대립이라고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아니 바로 ‘나’인 몸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 없이 예법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몸은 그저 욕망 덩어리에 불과하였다. 과거 남성지배주의적 관점과 자연지배적 발상 또한 현재의 ‘몸’을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정신’에 사로잡혀 현실의 문제를 머리 속으로만 해결하려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몸’을 천시하지 말자! 저 높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정신’의 위치와 동일곳으로 우리의 ‘몸’을 승격시키자. 그러한 몸철학적인 발상만이 현실과 사이버세계를 혼동하는 세대들에게 ‘접속’이 아닌 ‘접촉’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을 이토록 소중하게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맘을 표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본 글은 한국체육대학교 심승구 교수님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한국몸문화연구회의 세미나 주제로 선정된 책이며 긴 시간 토론을 이끌어 주신 심승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김미숙 (2004-06-04 07:28:54)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