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사회에 일고 있는 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 한국무예연구소(소장 심승구)는 지난 2004년 이에 대한 개념정의를 시도한 바 있다. 심승구교수의 문화콘텐츠 개념에 대한 정리를 소개한 글이 있어 게재한다.
이에 대한 기사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CT 뉴스에 실렸다. 이에 회원여러분들에게 문화콘텐츠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 콘텐츠는 가치혁신과 가치창조
[최연구의 문화콘텐츠 강대국만들기 7]
최연구 박사(외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사)
70년대의 성장동력은 기계나 가전 등 하드웨어(Hardware)산업이었고 80년대는 소프드웨어(software)의 시대였으며, 90년대 들어서는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전이 성장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2000년대 성장 동력으로 ‘문화콘텐츠’를 꼽는다. 21세기는 콘텐츠웨어의 시대가 될 것 같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콘텐츠, 과학계는 과학콘텐츠, 문화산업계에서는 문화콘텐츠의 육성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누가나 중요성에 대해 동의하는 콘텐츠는 도대체 무엇이고, 콘텐츠는 산업적으로 왜 중요한가.
지난번에도 콘텐츠에 언급한 바 있지만, 콘텐츠를 제대로 정의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사람마다 학자마다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에서 어떤 개념에 대한 합의된 정의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중요하며, 논쟁을 거치면서 통용되는 정의를 찾아내는 작업은 큰 의미를 갖는다. 정의를 제대로 내린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을 뜻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필자는 “사회과학에서는 정의가 반이다”라고 단언하고 싶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책을 예로 들어보자. 누구나 책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정의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난감해진다. 아는 것과 정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쇄가 되어야 책인가, 제본이 되어야만 책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분량 이상 되어야 책인가에 대한 합의(consensus)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수히 많은 의문에 부딪힐 수 있다. 가령 인쇄가 안 된 것은 책이라고 할 수 없는 건지, 몇 페이지 이하의 적은 분량은 책이라고 할 수 없는 건지 등등.
정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고 약속이다. 커뮤니케이션 원론에서는 책(도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출판의 형식을 빌어 공중에게 제공되는 것으로서 표지를 제외하고 49쪽 이상인 인쇄된 비정기 간행물.”
왜 그런가. 그냥 그렇게 합의를 본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필사해 제본한 일기장은 책이 아니라는 것이고, 책이 되려면 출판의 형식을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정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합의(consensus)에 기초한 정의를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책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편의대로 특정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당대의 정의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매체는 사전이나 백과사전이다.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정의는 공신력과 권위 그리고 합의에 바탕을 해서 한 시대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의 의미를 반영한다. 문화콘텐츠나 인문콘텐츠란 말은 사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조어들이다. 콘텐츠란 단어는 백과사전에 나오지만 문화콘텐츠란 용어는 아직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엠파스 백과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콘텐츠(contents)는 ‘각종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매매 또는 교환되는 디지털화된 정보의 통칭’이라고 되어있다. 원래는 서적이나 논문 등의 내용이나 목차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화된 정보를 통칭하게 되었고 가령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해 제공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정보내용물, 비디오테이프, CD 등에 담긴 영화나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소프트웨어 등이 모두 포함된다는 부연설명도 달려있다.
그렇다면 콘텐츠는 디지털화된 정보에만 한정되는 것인지, 아날로그 콘텐츠는 콘텐츠가 아닌지 등의 의문들도 제기될 수 있다. 사실 문화콘텐츠가 정책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문화콘텐츠가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고 성작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서병문 원장은 2004년 5월에 열린 ‘과학과 영상예술의 창조적 융합 심포지엄’의 주제발표에서 문화콘텐츠산업을 “문화콘텐츠(cultural content)의 기획, 제작, 유통, 소비 등과 이에 관련된 산업”이라고 정의했고 그 예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음악/공연, 인터넷/모바일콘텐츠, 방송 등을 들었다.
한편, 학계의 논의를 살펴보면 아직 문화콘텐츠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부재하며 개념정의에 대한 시도도 그리 많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각자가 자신의 입장이나 자신의 학문적 편향에 따라 나름대로의 의미와 자기학문 중심적인 개념으로 문화콘텐츠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용어에 대한 진지한 개념정의를 시도한 한국체대의 심승구 교수는 문화콘텐츠를 다음과 같이 개념 정의하고 있다.
“문화콘텐츠란 곧 문화의 원형(original form + archtype)또는 문화적 요소를 발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원형성, 잠재성, 활용성)를 찾아내어 매체(on-off line)에 결합하는 새로운 문화의 창조과정이다.
현재 문화콘텐츠 분야가 새로운 응용학문 분야로 주목받을 수 있는 배경이자 특성은 ‘다학문(多學問)의 통합성(統合性)과 다양한 문화가치(文化價値)의 창출(創出),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활용성(活用性)’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문화는 공유되는 상징과 규범의 체계라는 고전적 의미만으로 더 이상 정의되지 않고, 사람들의 실천(practice)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며 또는 재확인되거나 변형되거나 때로는 부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역동성과 가변성이 문화콘텐츠 영역을 통해 포착되고 끊임없이 시험된다.
실제로 문화콘텐츠는 다양한 사회구성들 사이에 문화가 어떻게 서로 다르게 이해되고 그러한 이해가 실천을 통해 복원(restoration)과 재현(represent)되는지가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 점은 문화콘텐츠가 다양한 문화가치의 창출기반인 동시에 현실적 적용과 구현이라는 활용성을 본질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콘텐츠는 ‘실용학문의 허브’인 동시에 ‘21세기형 실학’이라는 실천적 가치를 함의한다.”(심승구, 한국 술문화의 원형과 콘텐츠화, 2005 인문콘텐츠학회 학술심포지움 발표자료집에서)
산업계와 정책입안자들은 문화콘텐츠를 신(新)성장 동력의 엔진이자 고부가가치의 원천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인문콘텐츠학계(또는 문화콘텐츠학계)에서는 인문학적 자원과 상상력을 산업과 연계시켜 인문학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어쨌거나 둘 다 가치창출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심승구 교수의 문화콘텐츠 개념 정의는 문화의 전통적 개념을 넘어 복원과 재현에 의한 가치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보인다.
콘텐츠산업의 발전 방향에 대한 현실적 고민도 중요하겠지만, 출발선상에서 차근차근히 문화콘텐츠의 범위와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보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문가들은 보통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콘텐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필자도 이런 관점이 기본적으로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는 단순히 영어단어 content나 contents를 우리말로 옮긴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콘텐츠는 미디어나 기술을 전제로 하는 내용물이다. 하지만 디지털기술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아날로그 콘텐츠도 가능하고 문화적인 소재를 기획하고 포장하고 상품화시킨 것도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콘텐츠란 말이 애초에 산업이나 상품을 전제로 하고 나온 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적 상황에서의 콘텐츠가 산업이나 상품가치와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콘텐츠란 어떤 소재나 내용에 여러 가지의 문화적 공정을 통해 가치를 부여하거나 가치를 드높인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콘텐츠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이거나 아니면 기존 가치의 혁신의 산물이다. 콘텐츠화의 공정은 기획이 될 수도 있고 디지털화를 통한 정보 가공이 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결합을 통한 재창조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콘텐츠는 비로소 산업적, 상업적, 문화적인 가치를 가진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