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시대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 특성과 의미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4-10-30 09:19:12
이 글은 2004년 궁중의례 재현행사 보고서인 <<조선시대 숙종 인현왕후의 가례의식 고증연구>>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조선시대 숙종ㆍ인현왕후의 가례의식의 특성과 의미
조선왕조는 국왕의 혼인을 비롯한 왕실혼례를 ‘가례(嘉禮)’라고 불렀다. 이번에 재현하는 가례는 1681년(숙종 7)에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와의 왕실혼례이다. 1680년 숙종의 첫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소생없이 승하하자, 왕실은 국모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인현왕후 민씨(당시 15세)를 왕비로 삼는 가례의식을 행하였다.
원래 가례는 국가 기본예식인 오례의(길례ㆍ가례ㆍ빈례ㆍ군례ㆍ흉례)의 하나로서, 경사스러운 국가의례를 통 털어 일컫는 말이다. 다만, 조선왕조는 국가의 경사 가운데 왕ㆍ세자ㆍ세손 등의 혼례를 더욱 중시하여 이를 또한 ‘가례’라 하였다. 특히 국왕의 가례는 ‘만세의 기초’이자 가장 큰 국가 행사의 하나로서, 일명 국혼(國婚) 또는 대례(大禮)라고도 하였다.
왕실의 가례는 보통 2~6개월이 소요되는데,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는 5개월이 걸렸다. 그 절차는 우선 국왕의 혼인이 결정되면 전국에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후보명단인 처자단자(妻子單子)를 거둬들인다. 이어서 초간, 재간, 삼간 3단계의 절차인 삼간택(三揀擇)을 거쳐 왕비를 결정한다. 왕비가 결정되면, 가례의식을 전담할 가례도감을 만들고 영의정 이하 관리들은 각종 업무를 담당한다. 이때 국왕의 명을 받드는 정사와 부사는 반드시 부부가 해로하고 아들이 많은 신하로 임명하였다. 왕실의 안녕과 자손의 번성을 바라는 뜻에서였다.
새로 간택된 왕비는 궁궐 밖에 별도로 마련된 별궁에서 왕실의 법도와 가례의식을 익힌다. 이어서 길일을 택하여 정식 혼례인 가례의식을 치른다. 가례의식은 모두 6가지 절차인 납채(혼인을 구하는 의식), 납징(예물을 보내는 의식), 고기(기일을 알리는 의식), 책비(왕비를 책봉하는 의식), 친영(왕비를 나가 맞이하는 의식), 동뢰연(교배 후 잔을 나누는 의식) 등 육례(六禮)로 진행된다. 다만, 육례를 치루기 전에 습의(習儀)라고 해서 각각 3차례씩 예행연습을 하였다.
육례는 보통 1달간에 걸쳐 왕이 사는 궁궐과 새 왕비가 임시로 머무는 별궁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가례의식인 육례를 마친 후에는 새 왕비가 왕대비(명성왕후, 현종의 비)와 대왕대비(장열왕후, 인조의 비)께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朝見禮), 백관들의 하례를 받는 진하(陳賀)의식을 행하였다. 내외명부의 조하(朝賀)를 받는 절차도 있었으나, 생략하였다.
행사 후에는 수고한 관리들에게 상을 내리고, 행사 기록을 종합 정리한 『가례도감의궤』을 편찬하여 후일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의궤는 어람용 1건과 예조와 4사고에 보관하는 분상용 5건이 편찬되었다. 현재 숙종ㆍ인현왕후의 어람용 의궤는 파리국립도서관에, 분상용은 규장각(태백산본과 오대산본)과 장서각(적상산본)에 소장되어 있다. 아울러 『가례반차도』가 남아 있어 당시 행사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의식에서 주목되는 절차는 친영이었다. 국왕이 별궁에 나가 왕비를 맞아 궁궐로 돌아오는 친영은 그 이전에 한 두 차례 시행된 적이 있었으나, 숙종대에 비로서 확립된 왕실의 혼례절차였다. 또한 당시 가례의식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왕비가 직접 종묘에 고하는 묘현례(廟見禮)도 숙종대 인현왕후가 처음으로 행하였다..
이처럼 숙종대의 가례의식은『국조오례의』(1474) 이래 양란 이후 변화된 의식을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서, 후일『국조속오례의』(1751)에 명문화되어 조선후기 국가의례의 전범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 동안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이 많이 이루어져 왔지만, 국왕의 혼례인 가례의식을 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의 왕은 대부분 세자시절에 혼례를 하기 때문에 국왕이 된 후에 왕비를 맞아 혼례를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숙종 인현왕후의 가례를 재현하게 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가례는 창덕궁과 별궁(어의동, 현재 종로구 효제동)에서 이루어졌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경복궁 근정전에서 책비와 친영, 동뢰연을 중심으로 재현하였다. 숙종ㆍ인현왕후 가례의식 재현행사는 철저한 학술적 고증을 거쳐 의례절차는 물론이고 복식, 의물, 의장 등을 새로이 복원하고 제작하였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지만, 조선 중ㆍ후기 왕실의 혼례문화를 살피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2004년 10월 23일
책임고증 심승구
(문학박사, 한국체대 교양학부 교수)